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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심리

이왕 우울증이면 아름다운 우울증을 목표로

by angel_0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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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슨 장난같은 소리일까? 하고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우울한데 무슨 아름다운 우울증이라는것인가. 우울증이라는것에 대해서 잘 모르는게 아닐까. 우울증인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란 없다. 그것은 오만이나 사치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아름다움을 목표로 하냐는 것이냐! 화가 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보면 희극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터널 시야'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이 터널 시야에 빠지기 쉽습니다. 터널 시야란, 마치 터널을 통과해 가고 있는것 처럼 주변은 컴컴한데 저 멀리 작은 빛나는 구멍을 보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 구멍은 나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죠. 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저 곳으로 빠져나갈거야...

 

그런데 그 빛나는 구멍은 어쩌면 '자해'라던가 '자살'이라는 곳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비현실적인 대책만 바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돈만 있으면!' 하는 터널 구멍에만 집착하게 되는것이죠.

 

이 세상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양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면, 세상에 무엇이 있든, 어떤 아름다운 작품이 존재하든 , 아름다운 휴양지, 여행지가 있든, 맛있고 색다른 음식이 있든 다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으니,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것들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즐거운 것들은 귀찮은 것들이 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병이 존재하는걸까요. 살아있는 생명에게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는 병이라니,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이지 않나요?

 

우울증은 흔히 '하강나선'이라고 합니다. 기분이 안좋아지면 나쁜 생각이 들고 나쁜생각이 들면 더 기분이 안좋아집니다. 그러면 더 나쁜 생각이 나고 더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식으로 끊임없이 우리는 내려가 바닥에 이르게 됩니다. 우울증의 늪은 실로 자력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우울증이라 의심되면, 약한 우울증이든 심한 우울증이든 상관없이 전문가를 찾아야하는것입니다. 

 

오늘, 우울증이라면 이왕이면 아름다운 우울증이 되자는 것은, 터널 시야에서 벗어나 보자는 목적으로 쓰는 글입니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Charlie Chaplin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우리는 슬픈 영화를 볼때 눈물을 흘리지만, 우울증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슬픈 영화속의 주인공들은 사실 '현실'보다 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이기때문에 더 극적이고 더 감정적입니다. 슬픈 영화의 각본을 짠 작가는 영화주인공으로서는 그를 악마에 견주게 할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나 비극적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주인공이 만약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신(작가)을 원망하고 싶어지겠죠? 

 

우리는 그런데 슬픈 영화를 볼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도, '서사'를 함께 생각하면서 감정을 이입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사건들, 주변 관계, 주인공이 놓친 기회, 과거, 미래 등등 모두를 생각하면서 주인공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느냐, 주인공의 비극이 , 주인공의 슬픔이 어떤 의미를 얻고 승화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고대로부터 '비극' 이야기는 주요한 스토리 소재였습니다. 그것은 비극을 관람하는자에게 눈물과 함께 어떤 감정의 해소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도 하죠. 주인공이 영화속에서 빠져나와 관람객의 한명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슬픈 영화는 현실로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빠져나와 관람객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그 슬픈 영화는 깊은 울림을 주고 추억의 한 형태가 되어 남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사실 글쓴이는 슬픈 영화를 싫어합니다. 영화는 재밌는것만 봐야한다는 저만의 규칙이 있어서요. 그러나 아예 안본것은 아닌데, 슬픈 이야기는 '슬픔'이라는 감정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별, 죽음 등등... 우리의 삶에 그런것들이 나타났을때 그 슬픈 영화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죠. 영화는 게다가 미학을 가미한것도 많죠? 우리 인간의 감정을 더 미화시켜서 더 아름답고 깊은 의미를 지니도록 하기도 합니다. 미화된 우리의 감정은 허상적이라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겠지만 좋은면으로 보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쉽다는 면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비극에 우리가 공감이 쉽게 가는것은, 슬픈 스토리의 서사가 깊고 아름답게 미화되어있기도 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 '공감'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우울할때 우울함을 더 가중시키는 것 중 하나는 외로움입니다. 우울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중속, 친구들 속에 둘러쌓여 있더라도 마음속에서는 고독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울한 마음, 공허한 마음이 드는데 주변에 기댈 곳이 없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더라도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손에 꼽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요. 전문가를 찾을때 자신의 마음을 잘 공감해주는 분을 찾게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만약 전문가가 오히려 비난하고 결점을 지적하려한다면 다른 전문가를 찾아가도록 하세요. 공감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하튼 우울할때는 매우 외롭습니다. 자신이 절벽끝에 몰아세워져 있는 상태에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스스로 대답을 찾지 못할때 그때에 주변에서 도와줄 이, 고통에 대해서 토론할 이가 없다면 우울증은 더 가중됩니다. 그리고 고독을 느끼고요. 아주 심각한 상황에 이를정도로. 더 심해지면, 고독도 버리고 텅 빈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빠져나올길이 있으니, 다시 반복하지만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것입니다. 전문가, 상담사나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그 다음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공감'을 얻기 쉬운 '아름다운 우울증'이 되게 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울증에서 '아름다운' 우울증이 되기 위한 목적은 공감을 더 쉽게 받기 위해서입니다. 누구에게서?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우울증에 공감이 되게 한다. 이때 그 공감은, 자기합리화 같은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나약함, 결점 등을 포용해주는것.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는 관대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반대이고 혼자 속편하게 살기도 하죠. 우리는 중간 어디쯤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경계까지는 나에게도 관대하게 해주고 포용해주어야 하는것이죠. 

 

우울증이라고 비참하고 괴롭고 .. 하찮고, 구차하고, 의지박약에 무기력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우리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내 마음에 '공감'하는 것으로서 시작하여 점차 이 세상에도 공감하는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으로서 우리의 우울증은 공감을 비교적 쉽게 받는 '아름다운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황혼이 슬프게 느껴진 적이 있으실지도 모르겠군요. 해가 저물면서 그 세력이 약해질때 우리는 죽음을 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황혼은 황혼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황혼이 슬픈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물어가는것, 약화되어가는것, 기력이 쇠한것이지만 그것들에게서도 또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붉게 물든 황혼에게 잘가라고 인사해 주는것입니다. 나의 우울증도 그렇게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태양이 완전히 저물어 깜깜한 밤이 오면,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충분히 쉬어주어야 합니다. 우울한 상태에서 곧바로 행복해지기보다는, 충분히 쉬는동안의 중간과정을 겪어서 우울함에서 평범함, 그리고 행복함까지 나아가는게 보통이거든요. 만약 내가 지금 깜깜한 암흑속에 있는 와중이라면, 두려워 하지 마세요. 낮과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 하기 보다는, 마음을 편히 가지고 쉬는데 주력하도록 하세요. 밤은 쉬기 아주 좋은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생업이라는것이 있죠. 여기서는 생업을 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신 마음이 쉬는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평소보다 걱정할거 반만 하고, 계획도 좀 더 느슨하게 세우고, 여가시간에 좀 더 시간을 쏟고.

 

우울함의 원인이 무엇이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때는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침착하고 이완된 마음이 더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내 우울함에 대한 공감으로서 '아름다움'을 얻으면 좀 더 쉬워집니다. 

 

'아름다운' 우울증은 따스한 시선이 함께합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감정들과 연결되어있고, 우울함만 따로 떼어놓지 않습니다. 불안함도 진정되고, 폭력에서 평화로 , 비관에서 긍정으로 바꾸는 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 나의 어두운 밤을 좀 더 편안하게 인내하는 기다림의 힘이 생깁니다. 

 

우울할때는 무엇이 옳은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것이 문제로보이고,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상태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에 공감해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것인가부터 살펴보세요. 그러면 한결 마음을 다스리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심리 상담사가 하는 일도 공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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